외교부 제1차관, 취임사
2025.6.12.(목) 외교부 청사
존경하는 외교부 동료 여러분,
박윤주 인사 올립니다.
우리는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복합위기의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형성되어온 국제질서의 틀이 급속하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한반도와 주변 강국들의 지정학적, 국제 경제적 역학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이제 외교는 국가의 생존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매일 매일의 삶에 다가온 민생에 직결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여기 계신 외교부 동료 한분 한분의 비상한 각오와 창의적 대처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관성과 답습의 유혹을 이겨내고, 상황을 주도하는 유연한 외교적 옵션을 강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우리 외교부는 정책 이행 기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외교 정책의 산실로서 역할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외교부 동료 여러분,
당면한 도전과 과제 앞에서 우리는 조직 문화와 바람직한 외교관 상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직 문화)
무엇보다, 우리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대화와 토론이라는 민주적 요소를 강화해야 합니다. 국내외적으로 설득력 있고, 합리적인 외교정책이 창출될 수 있는 토양이 우리 내부로부터 조성되어야 합니다.
우리 외교부는 혁신적이며,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는 우리 조직이 대한민국이라는 위대한 민주공화국에 헌신하는 ‘작은 민주공화국’처럼 작동하기를 소망합니다.
독단과 하향식 지시보다는, 집단지성을 통해 논리적으로 탄탄한 정책이 성안되어야 합니다. 토론에 있어 우리 직원들이 상급자나 동료의 눈치를 살펴 동조하거나, 너무 예의를 차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회의 때 의견을 내지 않는다는 것은, 겸손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일을 숙고하지 않는다는 지적으로 게으른 사람일 수 있습니다.
외교부 동료 여러분 한분 한분이 정책의 결정과정에서 ‘사람 對 사람’으로서 당당함을 유지하고 자신의 의견을 적극 개진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상명하복은 정책의 이행 과정에서나 중시되어야 할 차후의 덕목입니다.
조직 내 민주적 원리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간부 여러분들의 직원들을 향한 열린 자세와 큰 도량이 요구됩니다.
저도 명예로운 외교기관의 소중한 구성원인 여러분들의 인격과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부내에서 보다 자유로운 기풍과 주인의식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외교부 동료 여러분,
우리는 비슷한 경제규모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외교 인력이 제한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외교 역량이 한껏 발휘되기 위해서는 우리를 너무 구분하지 않는 화합과 통합을 추구해야 합니다. 전문 분야, 직급, 직렬, 학력, 출신지 등과 관계없이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부서간 칸막이를 넘어 가감 없이 소통하며 지혜를 모으고 우리의 외교정책을 이끈다는 자부심을 갖고 한 마음, 한 뜻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외교관 상)
다음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외교관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외교부 동료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외교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가 말씀드리려 하는 세 가지 덕목은 제가 어떤 도덕적 고점에서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보다는 제가 30년 남짓한 근무에서 느낀 것을 공유하고자 함입니다.
첫째, 저는 품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물론 외교 현장에서는 세련된 언어 구사력과 적절한 외교적 언사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진솔한 눈빛, 늘 경청하며 작은 약속이라도 지키려는 태도, 겸손한 자세가 더 큰 자산입니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역지사지 하는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여러 나라 사람들과 진실된 인간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외교 아니겠습니까? 따뜻한 온기가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인간적 유대를 쌓은 것이 외교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반대로, 권위적이고 특권적인 모습은 외교를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서 통합을 저해하고 소모적인 분열을 야기합니다. 또한, 총력 외교를 위해 협력해야할 중요한 파트너인 국내의 다른 기관과의 관계도 악화시킵니다.
둘째, 유연하고 전략적인 사고가 중요합니다.
저에게는 ‘원래’ 라는 말이 별로입니다. 어떤 현상이 ‘원래 그랬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전례에 안주하겠다는 타성을 상기시킵니다.
물론 세상에 어떠한 관례가 형성되는 데에는 그 당시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도와 정책, 규정의 해석은 현실에 맞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간 우리가 배우고 생각한 외교는 외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비판적이면서도 겸손한 자세로, 과거로부터 벗어나 현실 타개 방안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제가 연수하던 시절 강의실에 ‘정답은 당신으로부터’라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훌륭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 여러분이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업무에 적극적으로 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셋째, 우리는 대한민국을 더 잘 알아야 합니다.
위대한 우리 국민들의 기대와 소망, 그리고 걱정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합니다. 저도 커리어 내내 주로 바깥을 관찰하다 보니,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해 둔감해지고 잘 모르는 분야도 많습니다.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청년 세대에 보다 좋은 국가와 사회를 물려주기 위해 외교부 동료 여러분들도 힘을 보태야 합니다.
다른 여러 나라들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사회도 지역주의, 미래 성장 동력 확보, 산업 공동화, 고령화와 인구절벽, 산업 안전, 청년 실업, 두뇌 유출, 세대 간‧성별 간 대립, 높은 자살률, 연금‧ 의료 문제, 시민 의식, 병역 제도 개선 등 많은 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다른 사회로부터 반면 교사 삼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며,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고 일을 해나갔으면 합니다.
(외교 인프라)
외교부 동료 여러분,
외교부에서의 삶은 대외적 이미지와 달리 그렇게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잦은 이사와 재정착은 열 번을 넘게 해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언어적‧문화적 고립감, 미혼 직원분들의 결혼 문제, 가정과 일의 양립, 후진국 근무시 수반되는 의료와 치안 문제 등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 해외에서는 ‘큰 축복이었구나’ 느끼는 순간이 적지 않습니다. 저도 여러분과 고충을 함께하는 사람으로서, 직원들이 업무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작은 변화라도 만들기 위해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감사 인사)
사랑하는 외교부 동료 여러분,
우리 청사에 들어서면 순직자 추모공간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빌어 목숨 바쳐 일한 그분들의 숭고한 노력과 희생에 다시금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 방방 곳곳에서 헌신하고 있는 외교부 동료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들을 뒷받침하고 있는 가족 한 분 한 분께도 감사와 존경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순직자 추모 공간에 계신 선배님들은 우리를 굽어보시는 하늘에서 빛나는 별입니다.
그리고 제게 있어, 본부와 지구 곳곳에서 뛰고 있는 우리 외교부 동료들은 지상에 반짝이는 소중한 분들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